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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밥

우리가 불행한 이유

"대표님은 아는 게 힘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세요?"

백종원의 골목식당 112회 中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위생 상태가 엉망인 주방을 보고 난 정인선 씨가 음식을 이미 시식해버린 백종원 대표에게 물은 말이다. 만약 더러운 주방에서 만들어졌단 걸 평생 모른다면 백 대표는 기분 나빠질 일이 없다. 그러나 정인선 씨는 백 대표에게 주방이 더럽다는 사실을 일렀다. 사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쓰는 등의 신체에 실질적으로 위해를 줄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면 위생 관념은 기분 문제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정인선 씨는 백 대표가 언젠가는 주방이 더럽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므로, 음식을 전부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특정한 상황에서 '모르게 둠'과 '알게 함'의 저울질을 통하여 선택에 대한 우열을 가린 뒤,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알게 함'에 대한 선택으로 나아갔다. 정인선 씨가 백 대표로 하여금 저울질했듯 우리는 자신의 일을 객체로 일상생활이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매일 추상 속에서 저울질, 즉 비교를 하며 최선을 다하는 방향을 정한다. 이어 학생 입장에서 비교와 불행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대입이든 취준이든 모든 과정이 상대평가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체계에 적응되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머릿 속에서는 체크리스트 형식의 평가 기준보다는 'A씨보다는 낫지만 B씨보다는 못하다' 형식의 상대평가가 본능적으로 우선한다. 심지어 '낫다/못하다'에서 그치지 않고 '얼만큼'이라는 수치도 동반한다. 이 수치는 성적일 수도 있고, 공부 시간일 수도 있다. 비교가 객관적이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학생들은 대부분 이러한 비교를 자신보다 우위인 이들을 능가하는 데에 필요한 노력을 측정하는 데에 사용하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능가하지 못할 때는 좌절한다. 그러나 압도적 우위인 이들과 비교할 때에는 필요한 노력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과 재능 한계치보다 높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단념할 수 있다. 따라서 개개인은 비교를 할 대상이 존재할 수 있는 구간인 실질적 비교 범위를 갖고 있다. 실질적 비교 범위는 자신을 중심으로 정의되며 꼭 자신을 축으로 대칭인 것은 아니다. '자기 측정 - 상대 측정 및 비교 - 노력 및 시도'의 비교 프로세스는 짧으면 수 일부터 몇 달이 소모되며 노력 및 시도 중에도 지속적으로 측정과 비교를 해야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겪는다. 따라서 상대평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심리적으로 평온한 상태이다. 이때, 자신 위에 압도적 우위자들만이 있는 것이 상대평가를 시행하지 않는 상태의 조건이다. 

 

<그림 1> 비교 수직선 I

  먼저 일반적으로 상대평가를 시행해야하는 상태를 표현한 그림 1을 상정할 수 있다. 수직선이 도출되기 이전 P는 자신을 측정하고, 상대인 {A, B, C, ⋯}의 능력을 평가한다. 실질적 비교 범위 내에 들어온 A와 B를 확인하였다면 자신 P와 비교하여 각각 열위와 우위임을 알게 된다. P는 B를 능가하기 위하여 간격 PB, 즉 P와 B의 상태 간격을 측정할 것이다. 상태 간격 PB는 P가 B를 넘어서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P가 측정한 최소 노력 이상을 시행함으로써 B를 넘어선 상황을 보자.

 

<그림 2> 비교 수직선 I

 그림 1과 그림 2의 변화에 주목하면 P는 필요한 최소 노력 이상으로 노력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A는 실질적 비교 범위를 벗어나 압도적 열위가 되었으며, P는 B를 넘어섰고 실질적 비교 범위 내에 있으므로 우위에서 열위로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비교 범위도 P와 함께 좌, 우 범위 각각의 크기를 유지한 채 평행이동했다는 것이다. 반면 C는 범위 내에 들어오지 않아 압도적 우위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림 2의 상황이 바로 심리적으로 평온한 상태이다. 실질적 비교 범위 내에 열위자만이 있기 때문에, P는 비교 프로세스를 더이상 시행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림 2 상황 이후 상대방 A, B, C ⋯의 상태가 갱신될 수도 있기 때문에 P는 간헐적으로 비교해야하지만, 그림 1의 P에 비하면 정신적 압박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이다.

 

<그림 3> 비교 수직선 II
<그림 4> 비교 수직선 II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 P는 비교 프로세스를 거쳐 Y를 자신보다 열위로 만들었다는 것은 첫번째 상황과 같지만, Z는 압도적 우위에서 우위로 상태가 변경되었다. P는 Y를 넘어서야하는 상황에서 Z를 넘어서야 하는 새로운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심지어 P는 간격 PZ에 비례하는 노력을 해야할 것으로 추산하는데, 그림 4의 간격 PZ는 그림 3에서의 간격 PY보다 더 넓다. 지난 시간 Y를 넘기 위해 해왔던 피나는 노력을 생각하면 P의 사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Z는 실질적 비교 범위 안에 있으므로 그를 소위 말하는 '넘사벽'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미련 없이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일정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열위로 만들었던 Y는 다시 자신을 앞지를 것 같다. 따라서 P는 노력을 줄이려 하면 Y에 의해 압박감을 느끼고,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Z를 넘기지 못하면 자책에 빠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다.

<그림 5> 비교 수직선 II, 비율=1:1.5

 그림 4의 비율만을 축소하여 Z 이후의 압도적 우위자 4명이 표현된 모습이다. 심리적으로 평온한 상태 범위는 상위권으로 가면 갈 수록 범위가 작거나 없다. P는 Z를 넘어서지 못하면 불안감에 빠질 것이고, 그렇다고 가장 가까운 범위로 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일부러 하향하는 모습은 우습다.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상위권으로 갈 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심리적으로 평온한 상태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매우 까다롭다. 까다롭다 못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다. 까다로운 조건에 자극되어 P가 처음의 상태보다 우수한 상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동안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이 불행의 본질이다. 비교 수직선은 좌, 우로 사실상 무한대이기 때문에 오른쪽 끝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일정 수준 이상 우수해진다면 평온한 상태 범위는 아예 없어지니 최상위권들은 커다란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자신 P는 한정된 범위의 상대방만을 읽는다. 하지만 수직선을 통하여 우위를 따라가는 것에 의미를 둬야지,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자책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거시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능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능가하더라도 동일한 과정이 더욱 강렬하게 반복된다는 걸 알았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위를 따라가고 있는 오늘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자각해야 한다. 

 

 또한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하여 큰 비교 범위를 통해 자극을 받는 것은 장점이지만, 지속적이고 과도한 스트레스는 포기의 주된 원인이다. 반대로, 작은 비교 범위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하는 등 비교에 대하여 둔감해질 위험이 있으며 장기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미래에 요구될 노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성공했다면 실질적 비교 범위를 적절한 크기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상대를 평가하고 자신을 그 사이에 끼워 넣는 '수동적 상대평가'가 있는 반면, 우리는 평가 기준을 자신 주위로 조정하는 '능동적 상대평가'를 하기도 한다. 능동적 상대평가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뤄보겠다.